책소개
988년 비잔티움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이교적 풍습과 미신적 토속 신앙을 갖고 있던 러시아는 개종하던 당시의 키예프 루시 시대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비잔티움식 형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이후 모스크바 공국 시대에 나타나던 이른바 종교에 대한 국가의 선점적 우위 형태는 키예프 루시 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페도토프가 지적하듯이, 키예프 루시의 종교적 양상은 기독교 사회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몽고 침입 이전의 키예프 루시는 그에게 러시아 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매력적인 시대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도움을 얻고 있는 민족주의가 이 시대에서 만큼 득세한 경우도 없었다. 당시 키예프 루시는 서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며 페도토프는 키예프 루시를 당대 가장 발달된 사회 가운데 하나로 보고 싶어 하는 일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역사관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저자는 소련의 종교사학자들이 흔히 범하곤 했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편향의 시각에서 종교사를 관찰하지 않는다. 그에게 러시아의 종교사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자 인문학적 저술의 한 소재일 뿐, 자국 문화의 수준을 과도하게 드높이지도, 수치스러울 정도로 깎아 내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고대 키예프의 문화에 대한 언급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나타난다.
사상사적인 입장에서 페도토프는 사회주의와 기독교,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견해는 종종 비러시아적인 것으로 외면되기도 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를 파시즘의 또 다른 형태로만 보고 있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페도토프는 사회주의와 기독교를 도덕적 갱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요, 평등한 사회 구조를 지탱할 가장 분명한 안전판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은 그로 하여금 볼셰비즘을 거부하는 결과로 나아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주의 개념이 혁명 주체 세력과 분명히 다른 길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했다.
200자평
러시아 문학과 문화, 역사를 전공하는 모든 이들의 고전. 키예프 루시 시대로부터 13세기 중세 초까지 300여 년을 포함하는 ‘러시아 기독교의 초기 역사서’이자 ‘러시아의 영적인 삶에 대한 개괄서’다.
지은이
본래 공학도였으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역사로 방향을 전환한다. 1914년 러시아로 돌아왔을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중세 유럽사 교수로 임용(1914∼1918)되었고, 이후에는 사라토프 대학(1920∼1922)에서도 가르쳤다. 소비에트 러시아 당시 계속해서 연구할 수 없었던 그는 1925년 조국을 떠나 파리의 러시아 신학대학으로 옮겨 가(1926∼1940), 이곳에서 러시아 교회사 교수가 된다.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동시대인의 수기(Современные записки)>, <길(Путь)>, <날짜(Числа)>란 저널을 만드는 데 협력했다. 1931년에는 <신도시(Новый град)>란 저널의 공동 발행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까지 편집일을 담당했다. 194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죽기 전까지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St. Vladimir’s Theological School)의 교회사 교수를 지냈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노어과와 동대학원 노어과를 졸업했고, 미국 캔자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Kansas)에서 2006년 노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책 ≪영어로 논문쓰기≫가 2002년 이후 도서출판 넥서스에서 쇄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의 저서 및 역서로는 ≪Aleksandr Pushkin’s The Tales of Belkin: Formalist and Structuralist Readings and Beyond the Literary Theories≫(The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08), ≪소비에트 러시아의 민속과 사회 이야기≫(민속원, 2009)와 ≪러시아인의 삶 농노의 수기로 읽다≫(민속원, 2011)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서문
I 기독교 이전의 이교 신앙
II 종교적 비잔티니즘
III 러시아의 케노티시즘
IV 금욕적 이상
V 러시아 종말론(Russian Eschatology)
VI 사제 계급의 의례
VII 평민들의 종교: 번역 문집
VIII 고대 연대기 작가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영적인 삶에 대한 역사적인 문제들은 우리 시대, 특히 러시아 역사와 관련하여 하나의 도전이다. 여러 변화와 혁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역사 발달은 러시아 종교사상의 통일성을 하나의 신화가 아닌 현실로 만드는 연속성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이 같은 통일성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양식으로만 표현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사상이란 것은 그 국가의 생명이 존속되는 한 존재의 새로운 형식이 선포되는 것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30쪽
러시아의 설교는 인간의 세속적 삶의 신비한 본질을 전달하는 일종의 프롤로그로 그 종말론적 플롯을 시작한다. 이같이 가시적인 순서 너머로 보이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일련의 사건이 이어진다. 모든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신과 사탄으로부터 두 천사를 영접하는데, 이들은 인간의 영혼을 선과 악으로 향하게 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면밀히 산정한다. 초인적 힘의 행동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에서 기술된다. ‘인간이 정의롭게 살게 될 때, 신의 천사는 인간 위에 손을 내밀게 된다.’ ‘악한 일에 빠져드는 것’은 사탄의 천사에 힘과 위엄을 내어주는 꼴이다.
-121쪽